힐링스토리

HOME > 암정보 > 힐링스토리

다시 찾은 소중한 나의 삶

황은화, 35세, 방광암.

2015년 1월 둘째 아이 출산을 마치고 한달이 안되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아프시지만 그래도 계속 우리 곁에 있으실 줄 알았는데...
예고없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은 저희 형제들에게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각자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출산 후 60일 정도부터 몸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다 방광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저희 가족은 모두 아연실색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이어 연달아 건강하던 막내동생이 방광암이라는 사실에 저희 가족은 다들 사색이 되었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병원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는 분의 도움으로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S병원에서 1차 조직검사겸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노인들이 많이 걸리는 이병에 30대 여성이 걸린것도 놀라운데 조직검사결과 보니 3기 이상이라며 그 다음부터는 3년 생존률, 5년 생존률이 나오며 저한테 생존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며 무조건 방광은 제거하며 소변백을 평생 달고다니는 방법밖에 없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암사이즈가 커서 먼저 항암을 해야 하는데 항암상담을 가니 항암하다 안좋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두 아이들, 3살 첫째와 태어난지 이제 100일도 안된 아이를 두고 제가 떠나야한다니.. 저로 인해서 이 어린아이들이 갑자기 엄마없는 아이들이 된다는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미어지고 미어지고 한없이 미어졌습니다. 죽음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갑자기 암에 걸리니 사형선고가 내려지듯 제 죽음이 정해져 있는 듯 하였습니다.

기적을 바라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고 그저 수치로만 살 가능성이 논의되는 차가운 현실이었고 그럼에도 달리 어쩌지도 못하고 항암상담을 기다릴때 저한테 기적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2015년 갑자기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메르스' 사태의 진원지가 된 병원이 당시 제가 다니던 병원이었고 메르스로 폐쇄조치에 들어가자 병원에서 한통의 문자도 없이 치료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렇게 위급하다며 다음주부터 항암 들어가기로 된 상황이었는데 아무 통보가 없자 새로 병원을 알아보게 되었고 주변 여러 군데서 성모병원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사실, 집에서 너무 멀어서 선뜻 내키지 않았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은화가 성모병원갔으면 좋겠다, 거기는 환자를 밀어내지 않고 환자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더라' 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들려주는 말 같았습니다.

성모병원에 오기전에 다른 병원을 들렸지만 거기서도 담당의사선생님은 '실비보험은 있으신지요? 항암은 나중에 하더라도 소변백은 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들었습니다. 암에 걸리고 나서 받아들 일 수 없는 현실과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다 타버린 듯했는데 성모병원에 처음 들어선 순간 1층에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을 보자 어디에도 다 하지 못한 하소연을 성모 마리아께서 한번에 다 알아주신 것 처럼 제 마음이 큰 위로를 받은 듯 했습니다.

또한 앞선 병원에서 안좋은 말들 안좋은 기억들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별로 기대안하고 비뇨기과 이지열 교수님을 뵈었는데, 교수님이 생각지 않게 제 상황에서 희망적인 얘기를 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사실 죽느냐 사느냐 이게 정말 저한테는 중요했기 때문에 소변백을 해도 내가 살수만 있다면 괜찮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수님께서는 삶의 질을 생각해야한다며 인공방광 할수 있다며 저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시고 항암도 수술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이제껏 그 어떤 희망도 보여주지 않고 차갑게 이러한 길만 남았다고 말하셨다면 이지열 교수님은 제 상황을 안타까워해주시고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전해져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교수님에게 제 모든 걸 믿고 맡기며 수술 후 그 어떤 상황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고 그래서인지 덕분에 정말 편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수술 하고 나서도 교수님이 늦은 밤에 올라와 보시고 불필요한 장치들은 제거해 주시며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시려고 한 점도 감사했었습니다. 또한 남편을 통해서 교수님이 수술 중에 땀을 뻘뻘 흘리신 채로 나오셔서 말씀은 안하셨지만 자궁을 남겨두실려고 했는데 안되겠다며 적출할 수 밖에 없겠다고 얘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는 사실 1차 조직검사 들어가기도 전에 영상만 보고 주변 장기는 떼어낼수 있는 건 다 떼겠다고 했는데 이부분에서도 교수님이 환자의 생명을 대하는 시선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불행히 항암은 받게 되었지만 교수님께서 좋은 교수님으로 연결시켜 주시겠다더니 정말 훌륭한 노상영교수님과 만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암은 '정신적 마라톤경주' 처럼 정신적으로 계속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몸도 전과 다르게 반응이 와서 불안하고 예민해지는데 노상영 교수님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분들도 세심하게 대해 주시고 환자의 근심 걱정을 덜어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교수님께서 매번 환자들을 성실하고 따뜻하게 봐주시는 게 느껴졌고 덕분에 항암도 잘 마쳤습니다.

암환자가 되기 전에 저는 그렇게 제가 사랑받고 있는 줄 몰랐습니다. 암은 평생 제가 짊어지고 갈 십자가고 형벌같은 것인데도 역설적이게 이 암을 통해서 제가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더 행복해졌습니다. 소중한 현재의 이 삶을 영위하게 해준 성모병원과 이지열 교수님, 노상영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정말 힘들때마다 눈돌리면 곳곳에 있는 십자가와 성모마리아상이 저한테는 도움이 되었고 간호사 선생님들과 그 외 분들 모두 따뜻한 성모병원은 한없이 자애로운 곳으로 기억됩니다.

감사합니다.

목록